서평

진실은 어떻게 힘을 잃는가― 리 매킨타이어의 『포스트트루스(Post-Truth)』(2024)

Ⅰ. 진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진실의 힘이 약해졌다

우리는 흔히 오늘날을 ‘포스트트루스(post-truth)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단순하게 이해하면 진실이 사라지고 거짓말이 넘쳐나는 시대라는 의미처럼 들린다. 그러나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가 『Post-Truth』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그보다 복잡하다. 거짓말이나 선동은 오늘날 처음 등장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은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했고, 기업 역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정보를 선택적으로 제공해 왔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의 상황을 특별히 ‘포스트트루스(Post-Truth)’라고 불러야 하는가.

매킨타이어가 주목하는 것은 거짓말의 증가 자체보다 사실이 사회적 판단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사람들은 거짓말을 했지만 적어도 거짓말을 진실처럼 보이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조차 진실이 판단의 기준이라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포스트트루스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객관적 증거나 사실이 제시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가치관, 감정과 맞지 않으면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다른 정보를 선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포스트트루스의 ‘post’는 진실이 역사적으로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 사람들의 판단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트루스(Post-Truth)』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진실인가?”보다 “왜 사람들은 사실이 존재하는데도 그것을 믿지 않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무지 때문인가, 아니면 사실을 믿지 않도록 만드는 사회적 환경이 존재하기 때문인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실을 의심하게 만드는가. 결국 매킨타이어의 문제제기는 개인의 인식 문제에서 시작하여 정치와 미디어, 권력의 문제로 확대된다.

Ⅱ. 거짓말보다 효과적인 것은 ‘진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매킨타이어는 포스트트루스가 갑자기 등장한 현상이 아니라고 본다. 그는 그 역사적 전조 가운데 하나를 과학적 사실을 부정해온 과정에서 찾는다. 대표적인 것이 담배와 암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이다. 흡연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증거가 축적되었지만, 담배 산업과 관련 이해집단은 이를 단순히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연구 결과에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과학자들의 견해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확산시켰다.

여기서 포스트트루스가 작동하는 중요한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반드시 거짓을 진실로 만들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진실을 확신하지 못하도록 만들기만 해도 충분하다. 사실에 대한 의심이 커지면 사람들은 판단을 유보하고, 결국 행동도 미루게 된다. 기후변화 문제에서도 유사한 방식이 나타난다. 과학 내부에서 존재하는 정상적인 논쟁이나 불확실성을 확대하여 마치 기후변화 자체가 아직 입증되지 않은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트루스의 핵심 전략은 단순한 거짓말보다 ‘의심의 생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도 그 사실의 신뢰성을 약화시키면 사실은 존재하면서도 사회적 영향력을 잃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포스트트루스는 단순한 허위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정치적·사회적 기술이 된다.

Ⅲ. 사람은 사실보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렇다고 포스트트루스를 정치인이나 기업의 조작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아무리 많은 허위정보가 생산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회적 영향력은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매킨타이어가 인간의 인지편향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완전히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모든 정보를 동일한 기준으로 검토하기보다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유리한 정보는 쉽게 믿으면서 불리한 정보가 등장하면 언론이 편향되었다거나 자료 자체가 조작되었다고 의심하는 경우가 그 예이다.

이러한 현상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단순히 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는 사실을 접하고도 자신의 신념과 충돌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즉 문제는 ‘정보가 부족한가’가 아니라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려고 하는가에 있다.

여기에서 현대 정보사회의 역설이 나타난다. 과거 정보가 부족했던 시대에는 진실을 찾기 어려웠다. 반대로 오늘날처럼 정보가 지나치게 많은 시대에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골라내기가 쉬워졌다. 검색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기존 생각을 지지해주는 수많은 자료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보가 많아질수록 반드시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믿고 싶은 진실’을 선택하기 쉬워지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Ⅳ. 소셜미디어는 어떻게 ‘하나의 현실’을 여러 개의 현실로 만드는가

개인의 인지편향을 사회적으로 증폭시키는 중요한 환경이 소셜미디어이다. 전통적인 언론에도 정치적 편향과 상업적 이해관계가 존재했지만, 기자와 편집자, 전문가 등의 일정한 검증 절차가 있었다. 반면 소셜미디어에서는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으며 정보가 얼마나 널리 확산되는가는 진실성뿐 아니라 클릭, 댓글, 공유와 같은 이용자의 반응에 의해 좌우된다.

특히 분노와 공포, 혐오처럼 강한 감정을 자극하는 정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쉽다. 정확하지만 복잡한 설명보다 단순하면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더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생긴다. 결국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이것이 사실인가?”에서 “이것이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가?”로 이동할 위험이 발생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용자가 자신의 정치적·문화적 성향과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자신이 좋아하거나 동의하는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서로 다른 정보를 접하고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한쪽 집단에서는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 다른 집단에서는 조작된 정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따라서

포스트트루스의 과정은 ‘인지편향 → 선택적 정보 소비 → 유사한 정보의 반복 → 기존 신념의 강화 → 반대 정보의 거부’

라는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사회는 단순히 의견이 다른 사람들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분열될 위험이 있다.

Ⅴ. 가짜뉴스보다 위험한 것은 ‘공통의 사실’의 붕괴이다

이 지점에서 매킨타이어의 논의가 지닌 가장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포스트트루스의 가장 큰 위험은 가짜뉴스가 많아졌다는 데 있지 않다.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사실이라고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공통의 기준을 잃어간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동일한 사실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경제지표가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놓고 정부 정책의 실패라고 평가할 수도 있고 국제경제 환경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해석과 가치판단은 다르지만 최소한 동일한 경제지표를 놓고 논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의 현실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쪽이 그 통계 자체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신뢰하는 매체의 자료만 사실이라고 인정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제 양쪽의 차이는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무엇이 사실인가에 대한 차이’가 된다. 공통의 출발점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트루스를 단순히 ‘거짓말의 시대’라고 정의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공통의 현실을 공유하기 어려워진 시대’라고 정의하는 편이 이 현상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논쟁하고 타협하는 제도이지만, 그러한 논쟁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어느 정도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Ⅵ. 서로 다른 현상을 모두 ‘포스트트루스’로 설명할 수 있는가

리 매킨타이어의 『포스트트루스(Post-Truth)』의 가장 큰 장점은 과학 부정, 인지편향, 정치적 선동, 가짜뉴스, 소셜미디어 등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연결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장점이 동시에 이 책의 한계가 될 수도 있다. 너무 많은 현상이 ‘포스트트루스’라는 하나의 개념 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과 일반인이 확증편향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믿는 것은 같은 현상이 아니다. 기업이 불리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것과 소셜미디어 이용자가 알고리즘의 추천에 따라 특정 정보만 반복적으로 접하는 것 역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철학적으로 객관적 진리의 가능성을 비판하는 것과 정치적으로 불리한 사실을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것도 동일한 층위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매킨타이어의 포스트트루스 개념을 보다 정교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허위정보, 인간의 인지편향, 정치적 선동, 미디어 구조, 진리에 대한 철학적 회의주의를 서로 구분하고 이들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포스트트루스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넓어져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진실의 문제를 포괄하는 모호한 용어가 될 위험이 있다.

Ⅶ. 포스트모더니즘은 정말 포스트트루스의 원인인가

매킨타이어의 논의 가운데 특히 논쟁적인 부분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트루스의 관계이다. 그는 객관적인 진리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진리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했던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가 역설적으로 현대의 사실 부정 정치에 이용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 부분은 보다 세심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푸코가 진리와 권력의 관계를 분석했다고 해서 모든 사실이 허구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문제의식은 어떤 지식이 어떤 제도와 권력관계를 통해 ‘진실’로 인정되는가를 분석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진리는 권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과 “객관적인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매킨타이어의 논의를 한나 아렌트의 「진리와 정치」(1967)와 연결하면 문제가 더욱 분명해진다. 아렌트 역시 정치와 사실적 진실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정치적 의견은 다양할 수 있지만 의견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실적 현실이 존재해야 한다. 정치가 사실 자체를 마음대로 만들어내기 시작한다면 정치적 토론의 기반 자체가 사라진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을 포스트트루스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단순화하기보다는 진실이 언제나 사회적·권력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다는 비판적 통찰과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정치적 행위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 구분이 이루어질 때 매킨타이어의 진실론도 더욱 정교해질 수 있다.

Ⅷ. 개인의 인지편향만으로 플랫폼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가

매킨타이어의 또 다른 한계는 인간의 인지편향을 비교적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오늘날 플랫폼의 경제적 구조에 대한 분석은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에서 허위정보가 확산되는 이유를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특정한 정보가 다른 정보보다 더 자주 노출되는지를 함께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의 에코체임버와 집단 양극화에 관한 논의를 연결해볼 수 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정보와 의견을 반복적으로 교환하면 처음의 입장보다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추천 시스템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을 가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리적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플랫폼 기업의 수익구조 역시 고려해야 한다. 이용자가 오래 머물고 더 많이 클릭하고 공유할수록 플랫폼의 경제적 이익이 커지는 구조에서는 이용자의 관심을 강하게 끄는 콘텐츠가 높은 가치를 갖게 된다. 분노와 공포, 갈등을 일으키는 정보가 높은 참여를 만들어낸다면 포스트트루스는 인간의 인지적 약점과 플랫폼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포스트트루스는 단순히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보다 정확하게는 인지편향, 정치적 이해관계, 플랫폼 알고리즘, 관심경제가 서로 결합하여 진실의 사회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현상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Ⅸ. 팩트체크만으로 진실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매킨타이어가 제시하는 해결책에도 한계가 드러난다. 그는 사실 확인과 비판적 사고, 언론인의 책임, 개인의 적극적인 대응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실을 몰라서 포스트트루스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 많은 사실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사람들은 왜 전문가를 믿지 않는가. 왜 언론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었는가. 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집단이 제공하는 정보만 신뢰하게 되었는가. 왜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의 정보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거부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개인의 미디어 리터러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신뢰의 문제를 드러낸다.

따라서 포스트트루스에 대한 대응 역시 개인의 팩트체크를 넘어 언론의 신뢰 회복, 전문가 집단의 투명성, 플랫폼 알고리즘의 책임성, 미디어 교육, 공론장의 복원 등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진실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실을 신뢰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회복하는 것이다.

Ⅹ. ‘진실의 회복’에서 ‘공통 현실의 회복’으로

리 매킨타이어의 『Post-Truth』가 가진 가장 중요한 의의는 오늘날의 진실 문제를 단순한 거짓말이나 가짜뉴스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과학 부정과 정치적 이해관계, 인간의 인지편향, 소셜미디어와 정보환경을 연결함으로써 그는 포스트트루스가 개인과 사회의 여러 층위에서 형성되는 현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분석을 오늘날의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포스트트루스는 개인이 잘못된 정보를 믿는 현상만이 아니다.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관심경제, 정치적 양극화, 전문가와 언론에 대한 신뢰의 붕괴가 함께 작동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실의 세계’를 형성하는 구조적 현상이다. 따라서 매킨타이어가 던진 “왜 사람들은 사실이 존재하는데도 사실을 믿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신념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하나의 현실을 공유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과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가 의미 있는 논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논쟁의 출발점이 되는 사실적 현실을 공유해야 한다. 사실 자체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면 논쟁과 설득은 불가능해지고 남는 것은 서로 다른 확신의 충돌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나 아렌트의 문제의식은 매킨타이어의 논의를 보완한다. 정치에는 다양한 의견이 필요하지만 의견은 사실을 대신할 수 없다. 푸코의 논의 역시 진실이 권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우지만, 그것이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선스타인의 논의는 다시 이러한 개인의 신념이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떻게 강화되고 집단적으로 극단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세 관점을 매킨타이어와 연결하면 포스트트루스는 단순한 인식의 오류가 아니라 사실·권력·미디어·신뢰가 서로 얽혀 있는 사회적 문제로 확장된다.

결국 『포스트트루스(Post-Truth)』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만 있지 않다. 더 절박한 문제는 진실을 사실로 인정하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트루스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진실의 회복’만이 아니다. 진실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 진실을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실을 공유하면서 논쟁할 수 있는 공론장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면서도 다시 하나의 현실을 공유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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