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살인은 왜 반복되는가?

교제살인은 오랫동안 ‘사적인 관계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으로 취급돼 왔다. 연인 사이의 갈등, 이별 후의 충동, 감정 통제 실패라는 설명은 교제살인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해왔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정부 공식 통계는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 2025년 여성폭력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전·현 배우자 또는 연인 관계에서 살인 혹은 살인미수로 검거된 인원은 219명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6.8% 증가한 수치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가해자의 다수가 남성이며, 연령대별로는 60대 이상 남성 비중이 가장 높았다는 사실이다. 교제살인이 젊은 세대의 문제라는 통념은 통계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스토킹 범죄 역시 교제살인의 위험성을 입증한다. 최근 3년간 스토킹 범죄는 매년 증가했으며, 가해자의 70% 이상이 남성, 피해자의 상당수가 전·현 애인 관계였다. 이는 교제살인이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장기간 누적된 통제와 감시, 폭력의 끝에서 발생하는 예고된 범죄임을 시사한다. 이제 교제살인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문화, 제도, 미디어 환경이 함께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으로 분석돼야 한다.

1. 교제살인의 기본 구조: 관계를 ‘소유’로 인식하는 문화

교제살인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연인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통제와 소유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관계관에 있다. 이 인식은 특히 관계가 끝나는 순간에 폭력으로 드러난다. 통계에서 피해자가 전·현 배우자인 경우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교제살인이 관계의 시작보다 관계의 종료와 깊이 연관된 범죄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계 인식은 가부장적 성역할,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 관계에서의 우위가 당연시되던 사회 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학습돼 왔다. 문제는 이 인식이 개인의 내면에 고착돼, 이별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배신’이나 ‘권리 침해’로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2. 누적되는 폭력의 경고 신호와 제도의 실패

교제살인은 대부분 단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폭언, 협박, 신체적 폭행, 스토킹, 감시와 같은 폭력이 반복적으로 누적된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폭력은 여전히 “연인 사이의 다툼”, “사적인 문제”로 축소된다. 문제는 이 단계에서 제도적 개입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접근금지 명령은 형식적으로 내려지고, 위반에 대한 처벌은 미온적이다. 그 결과 가해자는 통제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강화하고, 피해자는 신고의 실효성을 의심하며 침묵하게 된다. 이 구조적 공백이 교제살인을 가능하게 만든다.

3. SNS와 디지털 환경이 만든 새로운 위험

SNS는 교제살인의 직접 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폭력을 증폭·지속·가속화하는 강력한 매개체로 작동한다. 실시간 접속 여부 확인, 위치 추정, 온라인 흔적 추적, 차단을 무력화하는 다중 계정 생성은 이별 이후에도 관계가 끝났음을 인정하지 않게 만든다. 특히 SNS는 스토킹을 일상적 행위로 위장한다. 반복적인 메시지, 댓글, 온라인 감시는 물리적 폭력 이전 단계에서 가해자의 통제 욕구를 충족시키고, 분노 축적의 시간을 단축시킨다. 이로 인해 교제살인은 더욱 빠르고 치명적인 형태로 발생한다.

4. 미디어 서사가 폭력을 ‘이해 가능한 사건’으로 만드는 방식

미디어는 오랫동안 교제살인을 감정 서사로 설명해왔다. “사랑 때문에”, “이별 통보에 격분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라는 표현은 폭력을 선택한 가해자의 책임을 감정의 문제로 전가한다. 이러한 보도 방식은 교제살인을 구조적 폭력이 아니라 개인의 불행한 선택으로 소비하게 만들고, 피해자의 행동을 분석 대상으로 전환한다. 결과적으로 사회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유사 범죄는 반복된다.

5. 왜 60대 이후 가해자가 많아졌는가

최근 통계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60대 이상 남성 가해자의 증가다. 이는 단순한 고령 범죄 증가가 아니다. 은퇴 이후 직업 정체성이 사라지고, 사회적 관계가 급격히 축소되는 상황에서, 친밀한 관계는 많은 중·장년 남성에게 유일한 삶의 중심 축이 된다.

이 상태에서 관계의 종료는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삶 전체의 붕괴로 인식되기 쉽다. 더욱이 이 세대는 성장 과정에서 감정 조절, 거절 수용, 관계 종료에 대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분노와 상실은 표현되지 못한 채 누적되고,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여기에 SNS가 결합되면, 고립된 고령 가해자의 통제 욕구는 더욱 집요해진다. 디지털 기술은 관계가 끝났다는 현실을 부정하게 만드는 도구로 작동한다.

6. 교제살인을 멈추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전환

과거 교제살인은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 ‘사적인 사건’이었다. 현재 우리는 처음으로 교제살인의 규모와 구조, 연령대별 특징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통계는 분명한 경고를 보낸다. 교제살인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고령화와 디지털 환경 속에서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미래 역시 자동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캠페인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장년층 남성을 포함한 관계 교육, 감정 조절 지원, 사회적 고립 완화 정책, 디지털 스토킹에 대한 선제적 개입, 그리고 미디어 보도 관행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교제살인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가 방치한 결과다. 통계는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이해가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선택이다. 예방 가능한 죽음을 줄일 책임은 지금 이 사회 전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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