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둘째 주 신간 서적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의 빛을 따라》

― 천재라는 신화를 넘어, 노동하는 예술가의 초상

 라흐마니노프는 흔히 “비운의 천재”, “낭만주의의 마지막 거장”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익숙한 이미지에서 한 발 물러나, 망명자이자 생계형 음악가,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한 예술 노동자로서의 라흐마니노프를 복원한다.

피오나 매덕스는 전쟁과 혁명으로 조국을 떠나야 했던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하루에도 여러 도시를 오가며 연주를 이어가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무대에 서야 했던 현실은 ‘영감에 사로잡힌 천재’라는 낭만적 서사와는 거리가 멀다.

이 전기에서 인상적인 점은, 라흐마니노프의 위대함을 번뜩이는 순간의 재능이 아니라 반복과 수정, 성실함의 시간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그는 과거의 명성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고치고, 새로운 음악 언어에 귀를 기울였다. 이 책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독자뿐 아니라,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폭군》

― 왜 우리는 잔혹한 권력의 얼굴에 매혹되는가

  스티븐 그린블랫의 《폭군》은 셰익스피어 희곡을 다시 읽게 만드는 정치적 독해의 교본에 가깝다. 저자는 『리처드 3세』, 『맥베스』, 『리어 왕』에 등장하는 폭군의 형상을 통해, 절대 권력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왜 관객은 그 파괴의 서사에 끌리는지를 묻는다.

흥미로운 점은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의 검열과 권력 구조다. 왕을 직접 비판할 수 없던 시대에 그는 ‘이미 몰락한 왕조의 인물’을 무대 위로 불러내 안전한 거리두기를 확보했다. 그린블랫은 이를 단순한 역사적 우연이 아니라, 권력 비판을 가능하게 한 문학적 전략으로 해석한다.

이 책은 폭군을 과거의 인물로 박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폭군의 언어, 공포 정치, 충성의 연출 방식이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폭군》은 문학 연구서이면서 동시에, 현대 정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디지털 디톡스》

― 연결된 삶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이유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은 흔하지만, 이 책은 그 피로를 감정이나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과학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분석한다. 저자 폴 레오나르디는 20년 넘게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집중력과 에너지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책이 보여주는 핵심은 단순하다. 문제는 스마트폰 그 자체가 아니라, 과도한 도구의 증가와 끊임없는 전환이다. 이메일, 메신저, 화상회의, SNS, AI 도구까지 겹겹이 쌓인 디지털 환경은 우리의 전전두엽을 쉬지 못하게 만든다.

저자는 ‘맥락 전환’이 반복될수록 스트레스 호르몬이 축적되고, 이것이 만성 피로와 번아웃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해결책이 극단적인 디지털 단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기술을 끊으라고 말하기보다, 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선택의 기준을 회복하라고 제안한다. 이 책은 바쁜 현대인에게 “왜 이렇게 피곤한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안내서다.

《해석에 반하여》

― 젊은 수전 손택, 사유의 칼날을 세우다

 《해석에 반하여》는 수전 손택을 단숨에 20세기 지성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문제작이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예술 작품을 ‘의미로 해부하는 행위’ 자체를 의심한다. 손택은 과도한 해석이 감각과 경험을 질식시킨다고 비판한다.

이 책에서 만나는 손택은 신중하기보다 대담하고, 조심스럽기보다 단언적이다. 브레송, 카뮈, 그리스 비극에 대한 평가는 논쟁적이지만, 그만큼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예술을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느껴야 할 사건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지금 읽어도 여전히 도발적이다.

이번 재번역본은 손택의 젊은 패기를 현재의 언어로 되살린다. 《해석에 반하여》는 예술 비평서이자, 사고의 태도를 바꾸는 철학적 선언문이다.

《재활용의 거짓말》

― 착한 시민의 노력이 왜 헛돌고 있는가

  이 책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믿어온 ‘재활용 대국’이라는 신화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분리수거를 성실히 해온 시민들의 노력과 달리, 실제 재활용률은 매우 낮으며 상당량의 폐기물이 소각되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로 드러낸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의 핵심은 개인의 의식 부족이 아니다. 오히려 성과 위주의 행정,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 시장 논리에 맡겨진 재활용 시스템이 구조적 실패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은 비용을 부담하지만, 결과를 알 권리는 박탈당해 왔다.

이 책은 분리배출을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재활용을 ‘개인의 도덕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재정의한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공공의 개입 없이는 순환경제도 없다는 주장이다. 《재활용의 거짓말》은 환경 문제를 다시 정치와 제도의 영역으로 돌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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