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는 인종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그리고 극단적인 ‘우리와 그들’의 갈라치기가 횡행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의 파시즘이 군화 소리와 함께 광장에 나타났다면, 현대의 파시즘은 스마트폰 액정과 매끈한 정치적 수사 뒤에 숨어 스며들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다시 힘을 얻고 있는 파시즘적 징후들을 직시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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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Fascism)의 어원
파시즘은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묶음’이나 ‘단결’을 의미하며, 고대 로마의 집행관이 들고 다녔던 권위의 상징물인 ‘파스케스(Fasces)’—나무 막대기 묶음에 도끼를 끼운 것—에서 유래했다. 낱개의 막대기는 쉽게 부러지지만, 하나로 묶이면 부러뜨릴 수 없다는 ‘집단적 결속’과 그 결속을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공권력’을 동시에 상징한다. 따라서 초기 파시즘은 파편화된 개인들을 국가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통합하여 질서를 회복하려는 운동으로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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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Fascism)의 변화 양상
파시즘은 역사 속에서 그 형태를 끊임없이 바꾸어 왔다.
초기 파시즘 (1920-40년대)은 일당 독재, 카리스마적 지도자, 노골적인 군사주의와 인종 학살이 특징인 ‘국가적 체제’였다. 그 후 ‘파시스트’라는 용어가 단순히 적대적인 상대나 독재적인 인물을 비난하는 ‘욕설’이나 ‘낙인’으로 사용되며 본질적 의미가 희석되기도 했다. 현대에서는 파시즘은 거대 권력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가 타인을 검열하고 배척하며 획일성을 강요하는 ‘심리적 태도’와 ‘일상적 관계’ 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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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파시즘(Fascism)이 횡행하는 원인
왜 풍요로운 현대 사회에서 다시 파시즘적 현상이 나타나는가? 그 첫째 원인은 경제적 불확실성과 양극화에서 찾을 수 있다. 중산층의 붕괴와 고용 불안은 대중에게 강력한 질서와 ‘누군가 책임질 희생양’을 찾게 만든다. 둘째, 감정 자본주의와 불안에서 찾을 수 있다. 성과 사회 속에서의 번아웃과 고립감은 개인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극적인 혐오 정치나 강력한 지도자의 서사에 매료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알고리즘의 확증 편향이다. SNS의 알고리즘은 비슷한 생각만 강화하고 다른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 디지털 공간에서의 집단적 공격성을 정당화하는 토대를 제공한다.
파시즘(Fascism)은 ‘결속’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어 국가 폭력의 정점을 찍었으며, 현재는 우리 삶 전반의 권위주의적 태도로 변모했다. 현대의 파시즘은 특정 정치 체제라기보다, 사회적 불안을 먹고 자라는 ‘다양성에 대한 공포’의 표출이다.
앞으로의 파시즘은 과거처럼 제복을 입은 군대의 모습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탈을 쓴 포퓰리즘’이나 ‘알고리즘에 기반한 여론 통제’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회복하고,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수성의 정치’가 필요하다. 생각의 외주화를 멈추고 스스로 사유하는 시민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파시즘이라는 유령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