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살인은 왜 반복되는가?

교제살인은 오랫동안 ‘사적인 관계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으로 취급돼 왔다. 연인 사이의 갈등, 이별 후의 충동, 감정 통제 실패라는 설명은 교제살인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해왔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정부 공식 통계는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 2025년 여성폭력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전·현 배우자 또는 연인 관계에서 살인 혹은 살인미수로 … 더 읽기

권여선 『봄밤』(2013) – 깊은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안은 자들의 사랑, 봄밤

권여선의 소설 『봄밤』은 중년 이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지만, 흔히 기대되는 위로나 성숙의 서사는 없다. 이 소설은 이미 삶에서 여러 차례 탈락한 인물들이 치명적인 병과 함께 살아가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간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불행 속에서도 끝내 그들의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 『봄밤』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묻되, 그 답을 감정이 아니라 태도와 책임, … 더 읽기

페미니즘 리부트(Feminism Reboot)란 무엇인가

페미니즘 리부트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사회 담론 중 하나가 바로 ‘페미니즘 리부트(Feminism Reboot)’이다. 뉴스, SNS, 유튜브, 대학 강의실, 직장과 일상 대화까지 페미니즘은 더 이상 특정 집단의 이론이나 운동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핵심 키워드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페미니즘은 예전부터 있지 않았나?”, “왜 굳이 ‘리부트’라는 말을 쓰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기 … 더 읽기

이주란의 단편소설 「위해」(2021)- 조용히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연대

이주란의 소설은 언제나 큰 사건보다 사라질 듯한 일상, 말해지지 않는 감정, 그리고 관계의 가장 낮은 온도에 주목한다. 그의 인물들은 대개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으며, 자신의 상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조용히 견디는 방식’을 택한다. 이주란 문학에서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이며, 서사의 공백은 독자에게 의미를 추리하도록 요구하는 적극적인 장치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 현대소설에서 드문 저강도 서정성과 윤리적 … 더 읽기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Kindred)』(1979)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처의 서사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세계는 과학기술의 미래를 예언하기보다 권력과 생존, 역사와 신체가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탐구하는 데 초점이 있다. 『킨(Kindred)』가 노예제의 기억을 시간여행으로 현재에 소환했다면, 『패턴마스터(Patternmaster)』 연작은 초능력 사회를 통해 지배와 복종의 구조를 드러낸다. 『파라블 시리즈(Parable)』에서는 붕괴하는 미국 사회 속에서 신앙과 공동체의 재구성을 묻고, 『블러드차일드(Bloodchild)』는 공생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버틀러의 소설들은 언제나 약자의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며, … 더 읽기

일본인의 기원, 고대 게놈이 밝힌 일본인 인구의 3중 구조 기원

1.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일본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역사 논쟁을 넘어 정체성과 깊이 연관된다. 오랫동안 일본 학계와 대중사회에서는 조몬인과 야요이인의 혼합으로 일본인이 형성되었다는 ‘이중 구조론’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2021년, 이 오래된 통설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도쿄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국제 공동 연구팀은 고대 인골의 전장(全長) 게놈 분석을 통해 일본인의 기원이 단순한 ‘두 갈래’가 아니라 … 더 읽기

피해자성은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 릴리 출리아라키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2025)

1.피해자 담론이 지배하는 시대의 역설 오늘날 공적 담론에서 “피해자”라는 말은 가장 강력한 도덕적 언어로 기능한다. 정치인은 법적 책임을 “정치적 탄압”으로 전환하고, 국가와 집단은 비판을 “차별”이나 “자유 침해”로 재명명함으로써 스스로를 피해자로 위치시킨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성은 약자의 고통을 가시화하는 윤리적 개념이 아니라, 정당성과 면책을 동시에 획득하는 권력 장치가 된다. 릴리 출리아라키(Lilie Chouliaraki)는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에서 이 … 더 읽기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2002)- 현대사회에서의 낭만적 사랑의 의미

사랑과 성과 사회 작가 정이현은 한국문학에서 ‘사랑을 믿지 않게 된 세대’의 정서를 가장 정밀하게 포착한 작가 중 한 명이다. 당선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보여주듯이 그녀의 소설 세계는 일관되게 연애·결혼·우정·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들이 더 이상 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는 현실을 다룬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초기작 「타인의 고통」과 「오늘의 거짓말」이다. 이 작품들에서 정이현은 인간관계가 이미 도덕이나 진심의 … 더 읽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끝내 도움이 되는 것 – 레이먼드 커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작은 행위 속에서 인간적 연대 레이먼드 커버(Raymond Carver, 1938–1988)는 미국 태생의 단편소설가이자 시인으로, 20세기 미국 미니멀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노동계급의 일상과 인간관계의 균열을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로 그려 「대성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 등의 작품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그의 소설은 말해지지 않는 감정과 침묵의 윤리를 통해, 작은 행위 속에서 인간적 연대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탐구한 작가로 … 더 읽기

12월 둘째 주 신간 서적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의 빛을 따라》 ― 천재라는 신화를 넘어, 노동하는 예술가의 초상  라흐마니노프는 흔히 “비운의 천재”, “낭만주의의 마지막 거장”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익숙한 이미지에서 한 발 물러나, 망명자이자 생계형 음악가,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한 예술 노동자로서의 라흐마니노프를 복원한다. 피오나 매덕스는 전쟁과 혁명으로 조국을 떠나야 했던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하루에도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