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금기의 미학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학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과 금기를 드러내는 데 탁월하다. 그는 문명적 가식에 덮인 인간 심리를 파헤치며, 성적 욕망(Eros), 파멸 충동(Thanatos), 관계적 권력 구조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열쇠』 역시 이러한 세계관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단순 관능성 묘사가 아니라, 금기를 넘나드는 심리적 해부를 통해 인간 본성의 이중성과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다. 소설 『열쇠』에서는 부부의 일기라는 서사 형식을 통해 욕망이 어떻게 언어화되고, 어떻게 파국적 충동으로 이어지는지를 치밀하게 보여준다.
욕망·질투·죽음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구조
장편소설 『열쇠』는 교토 대학 교수인 남편과 그의 아내가 각자 쓰는 일기를 번갈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남편은 정월부터 아내와의 성관계를 기록하며 그녀가 자신의 일기를 몰래 읽도록 유도한다. 남편은 아내의 고상한 이미지 아래 숨겨진 관능을 알고 있으며, 그 간극에서 오는 흥분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는 자신이 아내를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딸 고다코의 짝으로 생각했던 청년 기무라를 아내 곁에 의도적으로 접근시킨다. 기무라가 술에 취한 아내의 나체를 보도록 하거나, 아내의 사진을 인화하게 하는 등 질투심을 자극하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자신의 쾌감을 극대화하려 한다. 질투는 남편의 성적 욕망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며, 그의 행동은 점점 더 과감하고 비틀린 형태로 전개된다.
한편 아내 역시 남편의 일기를 읽으며 그의 의도를 간파한다. 그녀는 남편이 기무라를 이용해 질투를 유발하고 이를 통해 부부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기대에 맞춰 움직인다. 아내는 겉으로는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무라에 대한 호감을 점차 키워 나가며 남편의 계산을 넘어서는 욕망의 흐름에 자신도 몸을 맡긴다. 결국 아내는 기무라와 육체적 관계에 이르지만 이를 일기에 밝히지 않고, 남편에게 헌신적인 아내로 남는 것처럼 서술한다. 이 모든 욕망의 충돌 속에서 남편은 육체적 소모와 극단적 성적 집착을 반복하다가 뇌일혈로 사망하고, 마지막은 남편의 죽음 한 달 뒤 아내의 일기로 끝맺는다. 이 일기를 통해 비로소 두 사람의 욕망의 방향과 심리의 균열이 희미하지만 명확한 윤곽을 갖추게 된다.
욕망이 불러오는 파국의 메커니즘
장편소설 『열쇠』에서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분리되지 않는다. 남편에게서 에로스는 곧 자기파괴로 이어지는 타나토스의 발동과 연결된다. 그는 질투라는 감정을 성적 자극의 원동력으로 삼지만, 그 감정은 자학적이면서도 소모적이다. ‘질투 → 흥분 → 절정 → 육체적 소모 → 파멸’이라는 순환은 남편의 생명을 소진시키는 파괴적 구조로 작동한다. 아내 또한 남편의 욕망 구조를 인지하면서도 이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숨은 욕망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녀는 욕망의 폭주를 막기보다 오히려 받아들임으로써 남편의 타나토스적 충동에 무의식적으로 공모한다.
또한 이 소설의 핵심 장치는 ‘읽힘의 욕망’이다. 두 사람의 일기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텍스트이며, 읽힐 것이라는 전제는 곧 실제 행동을 조정한다. 일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욕망을 생성하고 확대하는 기제인 것이다. 텍스트에 각인된 에로스는 타나토스를 더욱 자극하며, 욕망과 죽음의 관계를 한층 더 긴밀하게 엮어낸다.
욕망의 구조를 해부한 심리 실험
『열쇠』는 단순한 외도와 관능을 다룬 소설이 아니라, 욕망이 어떻게 관계를 파괴하고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지를 보여주는 심리 실험적 작품이다. 부부의 일기를 교차시키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추리적 긴장감을 느끼게 하며, 두 사람의 심리를 다층적으로 파악하도록 만든다. 금기·질투·관음증 등 파괴적 욕망이 문학적 장치로 활용되고, 남편·아내·기무라·딸 고다코에 이르는 인물 간의 교차된 감정은 가족 전체를 욕망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남편의 죽음은 에로스가 초대한 필연적 결과이며, 작품은 욕망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고 변형시키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