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성과 사회
작가 정이현은 한국문학에서 ‘사랑을 믿지 않게 된 세대’의 정서를 가장 정밀하게 포착한 작가 중 한 명이다. 당선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보여주듯이 그녀의 소설 세계는 일관되게 연애·결혼·우정·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들이 더 이상 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는 현실을 다룬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초기작 「타인의 고통」과 「오늘의 거짓말」이다. 이 작품들에서 정이현은 인간관계가 이미 도덕이나 진심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태도와 관리의 문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것을 악의나 폭력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처리한다.
또한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정이현은 도시 여성들의 연애와 소비, 자기관리의 일상을 통해, 사랑이 더 이상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인생 설계의 변수가 되었음을 그린다. 이 작품의 여성들은 독립적이지만 자유롭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언제나 사회적 기준을 내면화한 상태에서만 움직인다.
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정이현 문학의 문제의식을 가장 노골적으로 밀어붙인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사랑은 완전히 사회적 계산의 영역으로 들어오며, 성(性)은 감정이 아니라 미래를 담보하는 교환 조건으로 기능한다.
1. 자본주의화된 사랑과 성
소설의 등자인물 유리는 반포에 거주하는 중산층 가정 출신의 여대생이다. 유리는 연애를 하고 있지만, 그 연애는 감정의 충동보다는 미래의 생활 조건을 기준으로 신중하게 관리된다. 유리는 두 종류의 남성을 만난다. 한 명은 명문대 의대에 재학 중이지만 ‘뚜벅이’인 남자이고, 다른 한 명은 지방대에 다니지만 차를 가진 남자다. 이들 모두 유리와 육체적 관계를 원하지만, 유리는 쉽게 응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성관계는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때에만 허락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의 배경은 유리의 가정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리의 어머니는 늘 말한다. 아버지를 만나 아이를 낳고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되었으며, 여자는 조심해야 하고 쉽게 깨질 수 있는 존재라고. 그래서 딸의 이름도 ‘유리’라고 지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유리에게 사랑을 믿지 말라는 경고이며, 이를 유리는 자신의 성(性)을 삶을 위한 자산으로 관리해야 되는 것으로 내면화한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이 친구인 혜미를 대하는 유리를 내면모습이다. 친구 혜미는 압구정에 사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다. 아버지는 혜미에게 폭스바겐 뉴비틀을 사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다. 혜미의 남자친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찌질한 취업준비생이다. 둘은 사고로 임신을 하게 되고, 혜미는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다.
유리는 혜미를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혜미는 집안이 부유하니 그렇게 살아도 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은 낭만적 사랑을 감행할 수 있는 계급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유리는 “자신의 낭만적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육체적 관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마침내 유리는 해외에서 로스쿨을 다니고, 집안 배경까지 훌륭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유리는 결심한다. 지금까지 고수해 온 이른바 ‘팬티 지키기’를 끝내고, 자신의 순결을 그 남자에게 바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두 사람은 남산에 위치한, 일명 ‘유리성’이라 불리는 하얏트 호텔로 간다. 유리는 첫 관계를 위해 스스로 정한 ‘10계명’에 따라 철저히 준비한다. 그러나 실제 관계는 고통스럽기만 하다. 유리는 심한 통증을 느끼지만, 침대 시트에는 처음 관계의 징표로 기대했던 피가 남지 않는다. 남자는 오히려 “너 되게 뻑뻑하더라”라며 유리에게 소중했던 첫 경험을 낮춰버린다. 즉 자신은 어느 정도 관계를 즐길 줄 아는 여성이 좋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호텔을 나서며 남자는 성관계에 대한 보상처럼 유리에게 루이비통 가방 하나를 건넨다. 유리는 그 가방을 통해 자신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호텔을 떠나는 순간, 유리는 계속해서 유리성을 뒤돌아보며 불안한 심리를 애써 외면하려 한다.
2. 현대인의 낭만적 사랑이 지닌 다층성
1) 남성의 욕망과 여성의 ‘전략화’
이 소설에서 중요한 점은, 유리의 선택이 단순히 개인적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남성들은 일관되게 유리를 성적 대상으로 욕망하며, 관계의 진전을 성관계로 환원하려 한다. 이 욕망은 노골적이기보다 일상적이며, 사회적으로 승인된 형태를 띤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유리는 자신의 몸을 방어하거나 거부하기보다, 전략화한다. 즉, 남성의 욕망이 여성을 이용의 대상로 만드는 동시에, 그 욕망은 여성이 남성을 자원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욕망의 상호 구조화다.
2) 가정과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
유리의 어머니는 딸에게 “여자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여성을 보호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성을 언제나 위험에 노출된 존재, 관리되어야 할 존재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남성 중심적 시선과 다르지 않다.
가정과 사회는 여성을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성을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강조한다. 유리는 바로 이 모순된 시선을 내면화한 인물이다. 그녀는 남성처럼 욕망하지 않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계산한다.
3) 유리라는 인물의 대표성
유리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에서 유리는 한국 중산층 여성의 심리적 일부를 응축한 존재다. 사랑을 믿고 싶지만 감히 믿을 수 없고, 이용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용하지 않으면 불리해지는 현실 속에서, 유리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믿는다.
유리가 유리성을 계속해서 뒤돌아보는 장면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 과연 안전한지에 대한 끝없는 불안의 표정이다. 그것은 개인 유리의 불안이 아니라, 사랑과 성, 계급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한국 여성의 집단적 불안이라 할 수 있다.
3. 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낭만을 비웃는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에 낭만은 있다. 그 낭만의 의미가 각자 다를 뿐이다. 정이현은 유리를 통해 현대인들이 꿈꾸는 낭만의 실체가 다름아닌 자본주의와 남성중심주의에 깊이 얽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유리의 행위를 통해서 비판을 가할 수도 있다. 주체로서의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유리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 오롯이 그녀만의 문제인가 하는 것은 되돌아봐야 한다. 가깝게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남성과 이 사회가 암묵적으로 만들어 준 것은 아닌지? 2002년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십 여년이 지닌 현재가 더하면 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번쯤 지금의 자신의 사랑이 어느 지점에 놓여 있고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행동이 어떠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