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후(戰後)는 정말 끝났는가
시라이 사토시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의 혼란을 바라보며 “전후(戰後)는 끝났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일본은 고도성장과 민주화, 평화헌법을 바탕으로 전후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국가로 자신을 설명해왔지만, 시라이는 이러한 자기 이미지가 허상이며, 일본은 사실상 패전을 끝내지 못한 채 패전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전후(戰後)를 이어온 국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묻지 않았고, 전쟁 지도층 상당수가 곧바로 정치권과 관료조직으로 복귀했으며, 미국이 주도한 점령체제 안에서 스스로 역사를 재서술할 기회를 놓쳤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일본 사회는 패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직접 직면하기보다 경제성장과 평화국가 이미지를 강조하며, 현실의 균열을 가리는 선택을 해왔다. 시라이의 문제제기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에 의하면 일본은 패전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패전을 부정한 채 패전을 영구화하는 체제를 만든 것이 아닌가?
패전(敗戰)을 부정함으로써 패전(敗戰)을 지속시킨 국가
시라이가 분석한 전후(戰後) 일본의 핵심은 패전 부정과 대미 종속이 서로를 강화하는 순환 구조이다. 일본 보수세력은 패전의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명확히 따지지 않았고, 전범 재판 이후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관련된 많은 엘리트들이 거의 제약 없이 정치·경제·관료 조직으로 복귀했다. 전후 복구의 속도와 미국의 경제·군사적 지원은 일본이 패전의 결과를 성찰하는 대신 경제성장의 성공 신화를 중심에 놓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국가 구조는 미일안보체제에 깊게 의존하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이 미국과 “대등한 관계”에 있다는 정치적 환상을 반복적으로 주입했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에서 일본의 자율성을 축소시키는 한편, 패전의 원인을 일본 내부가 아닌 미국의 점령 체제나 국제정세 변화에 돌리는 경향을 강화했다. 결국 일본은 패전을 공식적으로는 끝났다고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패전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즉 ‘영속패전(永續敗戰)’이라는 모순적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기억을 선택하는 국가
시라이 사토시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일본의 전후 기억정치다. 일본은 전쟁과 식민 지배의 책임, 난징 대학살, 위안부 문제 같은 불편한 과거를 사회적 기억의 중심에서 배제하는 동시에, 원폭 피해와 평화국가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이는 알레이다 아스만의 문화적 기억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본은 원폭 피해·경제 성장·평화헌법 같은 “기능 기억”만을 반복적으로 소환하는 반면, 침략 책임·가해 기억·식민지 지배는 “저장 기억”으로 밀어넣어 사실상 봉인해왔다. 이러한 기억의 선택은 일본이 스스로를 가해자라기보다 피해자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주변국의 역사적 문제 제기를 “근거 없는 비난” 혹은 “정치적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적 감정 구조를 낳았다.
일본의 역사 교육 또한 이 구조를 강화해왔는데, 중학교·고등학교 교과서의 침략 기술 축소, 전쟁 용어 완화, 위안부·난징 대학살 서술 삭제 논란은 일본이 국가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불편한 기억을 체계적으로 배제해왔음을 보여준다. 즉, 일본의 전후 정체성은 기억의 선택과 망각이 만들어낸 정치적 구성물이라는 것이 시라이의 비판이다.
종속 위에서 부르는 내셔널리즘
시라이는 일본 우익의 내셔널리즘을 “기괴한 구조”라고 규정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일본 우익은 강한 국가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군사적 후견 없이는 국가 안보를 유지할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정권 이후 자위대의 활동 범위 확대와 헌법 9조 개정 논의가 강화되었지만, 이는 일본 스스로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기보다 오히려 미국과의 방위 협력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다시 말해 일본의 국가주의는 독립된 국가 주권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종속 위에서 과잉 보상적으로 나타나는 국가주의이다. 이 때문에 일본 우익은 외교·역사 문제에서 다른 나라에 대해 과도하게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왔고, 이는 시라이가 말하는 “주체 없는 국가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일본은 스스로를 강한 국가로 느끼고 싶어 하지만, 실제 주권 행사는 미국과의 관계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내세우는 국수주의는 언제나 상징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에 머물게 된다. 이 모순은 센카쿠 문제,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에서의 일본 내 여론 폭발과 정치적 강경 발언을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영속패전론이 남긴 과제
시라이 사토시가 던지는 최종적인 메시지는 명확하다. 일본은 전후를 끝내고 싶어 하지만, 패전을 직면하지 않는 한 전후는 끝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패전을 부정한 채 경제성장과 평화국가 이미지를 반복해온 전후 80년의 역사 속에서, 패전은 끝난 것이 아니라 단지 보이지 않는 형태로 연장되어왔다. 영속패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저장 기억 속에 봉인된 과거를 다시 꺼내어 사회적·정치적 논의를 통해 재구성해야 하며, 이는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과정이다.
독일이 나치 과거를 직시하며 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한 경험은 일본이 참고할 만한 사례이며, 일본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해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고 이를 교육·정치·외교 영역에서 일관되게 반영해야 한다. 또한 미일안보체제의 불평등한 구조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실제적 주권 회복을 위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시라이는 일본이 전후를 넘어서는 길은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닌, 과거를 기억하고 직면하는 용기라고 말한다. 일본의 전후는 종언을 선언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재구성과 정치적 성찰을 통해서만 비로소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