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진영과 그의 문학세계
최진영은 2010년대 이후 한국 문단에서 가장 독자적인 목소리를 구축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의 문학은 겉으로 보기엔 잔잔하지만, 내면으로는 복잡한 상처와 정동의 구조를 지닌다. 그는 인간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단절, 상실, 외로움,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즉 그는 인물들이 겪는 고통을 단순한 비극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 고통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찾는 재생의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그의 작품 세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관계가 중요한 축으로 표현한다. 그는 가족이나 연인, 혹은 우연히 스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작은 빛이 되거나 상처가 되는지를 미세한 감각으로 포착한다. 관계의 회복이나 새로운 연결은 그의 소설에서 희망의 형태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현실의 단단한 벽을 너무 쉽게 긍정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최근작으로 갈수록 그는 더 본질적인 질문—‘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은 무엇을 발견하는가’—에 집중한다. 『구의 증명』(2015) 이후 『홈 스위트 홈』(2023)은 이러한 문학적 전환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한 사람이 죽음을 응시하며 자신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결정하는 내밀한 과정을 그린다.
끊임없이 떠도는 도시의 삶
소설 속 등장인물은 어린 시절부터 열일곱 번의 이사를 다니며 살아왔다. 대학 진학으로 서울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했고, 직장과 작업실을 옮겨 다니는 동안 도시에서의 삶은 언제나 임시적이고 불안정했다. 도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공간이었고, 그녀는 그 속에서 스스로를 ‘정착하지 못한 사람’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이러한 삶은 오늘날 많은 청년과 중년들이 겪는 현실과도 깊이 맞물린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작업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삶은 순탄치 않다. 그 속에서 만난 사람이 연인 어진이다. 둘은 결혼이라는 제도 대신 서로에게 기대어 조용한 일상을 만들지만, 암 진단이라는 사건은 이 평활한 일상을 다시 흔들어 놓는다.

암이라는 사건이 불러오는 질문 — 죽음을 바라보며 삶을 다시 이해하다
암 진단과 재발은 그녀를 삶의 가장 어두운 지점으로 몰아넣는다. 병의 차갑고 고요한 시간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와 시간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때 그녀의 내면을 가장 생생하게 드러내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죽어 가고 있다. 살아 있다는 뜻이다. 죽음을 죽음 자체로 두기 위해 오래 바라볼수록 슬픔이 커졌다. 두려움은 막연했으나 슬픔은 구체적이었다. 거기 나의 희망이 있었다. 슬픔을 위해서 움직일 힘이라면 아직 남아 있었다.” (27쪽)
이 문장은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바라볼수록 ‘삶의 감각’이 더 선명해진다는 역설을 담아낸다.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구체적 슬픔’은 그녀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남겨두었다. 즉, 죽음은 그녀에게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다시 선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 선택의 방향은 도시가 아니라, 그동안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자신만의 집’이었다.
보령 근처의 낡은 집 — 마지막을 맡길 ‘나의 세계’를 만들다
주인공은 도시를 떠나 엄마와 함께 보령 근처의 오래된 집을 산다. 그 집은 낡았고 허름하지만, 오래전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녀는 리모델링을 하며 발견한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따로 모아둔다. 언젠가 그 물건의 주인이 돌아와 그것을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곳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마지막 시간을 맡기고 싶은 공간이 된다.
이 집에서 그녀는 일상의 가장 작은 순간들을 꿈꾼다.
“또한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에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의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 (37쪽)
이 인용문은 그녀가 찾은 ‘천국’이 거창한 이상향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일상의 순간들일 것임을 보여준다. 죽음을 앞두고도 그녀가 꿈꾼 세계는 거대한 의미나 업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작은 것들의 조합이었다.
소박한 삶을 선택하는 용기
리모델링하여 살 보령 근처의 낡은 집은 삶은 타인의 시선에서 보면 소박하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등장인물에게 그 선택은 가장 주체적이고 고귀한 선택이다. 그녀는 도시의 과잉된 욕망을 뒤로하고 자신이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고요하지만 충만한 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이야말로 자기 존재를 가장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인의 삶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실제로 삶을 채우는 것은 눈부신 성공이 아니라 천천히 지나가는 순간들이라는 사실이다.
『홈 스위트 홈』이 전달하는 메시지 — ‘내가 선택한 삶’이 나의 천국
소설 『홈 스위트 홈』은 죽음을 앞둔 한 여성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하는 이야기다. 그 선택은 도시의 속도나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에게 충실한 방식에 가깝다.소설은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어떤 순간을 ‘나의 천국’이라 부를 수 있는가? 최진영은 이 작품을 통해 죽음을 응시하는 한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며, 오히려 삶의 본질을 밝히는 놀라운 문학적 성취를 이끌어냈다. 그가 보여주는 ‘자기만의 삶’이 주는 가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