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가 드러내는 잔혹한 현실- 정보라의 단편소설 「저주토끼」(2023)

민담의 잔혹성과 사회폭력의 결합

정보라는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한 뒤 예일대·인디애나대에서 러시아·동유럽 문학을 연구한 작가로, 국제적 학문 기반 위에서 독창적인 한국 환상문학을 구축해왔다. 그녀의 문학세계는 민담의 잔혹성, 초현실적 호러,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며, 현실 속 폭력을 환상적 장치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단편소설집 『저주토끼』는 이러한 그녀의 문학적 특성이 가장 응축된 작품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 비평가들에 의해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기괴하고도 정교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되돌아오는 폭력의 구조

단편소설 〈저주토끼〉의 화자는 대대로 저주용품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 온 집안의 후손이다. 겉으로는 대장간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원한과 분노를 물건으로 구현하는 일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집안은 동네에서 천대받았고, 할아버지에게는 단 하나의 친구만 있었다. 그 친구는 지역 술도가의 아들로 성실하고 유능한 청년이었으며 가업을 잇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러나 경쟁 술도가가 악의적 소문을 퍼뜨리면서 그의 가문은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새로운 술 제조법을 개발해 성공의 실마리를 잡았음에도 정치적 힘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사회적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내와 함께 자살하고, 남은 아이들은 미국으로 보내지며 가문은 사라진다.

이를 본 할아버지는 금단의 저주용품인 저주토끼 전등을 만들어 경쟁 술도가에게 보낸다. 전등 속 토끼는 창고에 방치된 채 서류를 갉아먹기 시작하고, 전등을 귀여워하던 사장의 손자까지 토끼에게 뜯겨 죽는다. 이어 아들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골절과 쇠약으로 사망하고, 사장 본인도 시대의 변화 속에서 세무조사를 받고 결국 파산한다. 그러나 복수의 완성은 끝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죽은 뒤에도 화자의 곁에 환영처럼 나타나고, 화자는 자신 역시 저주용품을 만들다가 “죽어도 죽지 못한 채 이승에 묶여 있을 것”임을 직감한다. 세상은 점점 더 잔혹해지고, 사람들의 분노와 원한은 늘어나며, 그 덕분에 저주용품 사업은 호황을 누린다. 이 결말은 “세상이 비참해질수록 저주는 번성한다”는 날카로운 현실 진단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저주토끼의 상징과 사회적 폭력의 가시화

단편소설 〈저주토끼〉가 드러내는 공포의 핵심은 초자연적 존재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저주를 만들어낸 인간 사회의 폭력이 진짜 공포임을 강조한다. 경쟁 술도가의 악의적 소문은 오늘날의 가짜뉴스, 온라인 마녀사냥, 조직적 음해와 다르지 않으며, 피해자가 순식간에 파멸되는 구조는 현대 사회의 비정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저주토끼는 이러한 폭력이 실체화된 상징으로, 인간의 악의가 되돌아와 파괴를 일으키는 존재다. 서류를 갉아먹고 사람의 몸을 침식하는 모습은 허위 정보와 권력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붕괴시키는지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분노와 슬픔과 원한이 넘치는 세상에서 타인에게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기원하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돈과 권력이 정의이고 폭력이 합리이자 상식인 사회에서 상처 입고 짓밟힌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 어느 때 보다 끔찍하고 비참한 곳이 되어가고 있으며, 그 덕에 사업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36-37쪽)

또한 할아버지와 손녀의 ‘유령성’은 사회적 약자가 겪는 배제와 고통을 상징한다. 그들은 살아도 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죽어도 사라지지 않고 떠도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는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의해 지워진 이들이 어떻게 다시 사회에 귀환해 균열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장치이다. 어쩌면 저주토끼는 “사회가 만든 폭력의 결과”이며, 복수의 완성 이후에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공포를 넘어 사회적 비판으로

단편소설 〈저주토끼〉는 단순히 초자연적 복수를 그리는 작품이 아니라, 폭력의 순환 구조와 사회적 부정의를 고발하는 문학적 우화이다. 한국 사회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소문 조작, 정치적·경제적 권력의 결탁, 약자에 대한 배제가 어떻게 인생을 무너뜨리는지 날카롭게 드러내며, 환상문학이라는 장르적 틀 속에서 현실의 잔혹함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호평받은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정보라는 민담적 호러를 현대 사회 문제와 결합해 보편적 폭력의 구조를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독자는 작품을 통해 “저주를 만든 것은 저주받은 존재가 아니라 사회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된다. 〈저주토끼〉는 결국 우리에게 다음 질문을 던진다. “누가 저주를 만들었는가?”, “우리는 폭력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었는가?” 이 질문은 작품을 넘어서 오늘의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강력한 문학적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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