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표현의 자유의 극한 실험

장정일의 문학은 한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문제적이면서도 회피할 수 없는 지점을 차지한다. 그는 시·소설·에세이를 넘나들며 일관되게 도덕, 가족, 국가, 예술 제도가 개인의 욕망과 육체를 어떻게 규율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해 왔다.

1.반항이 아니라 ‘위험한 실험’으로서의 글쓰기

장정일 문학의 핵심은 단순한 반항이나 저항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권위에 맞선다”는 도식 자체가 얼마나 쉽게 또 다른 권위로 전화되는지를 의심한다.

그의 첫 소설 『아담이 눈뜰 때』(1990)에서 이미 이러한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이 작품에서 ‘눈뜸’은 사회에 순응하는 성숙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과 도덕이 얼마나 허약한 허구인지 깨닫는 각성이다. 이후 장정일은 점점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금기를 호출한다. 이는 표현 수위의 과잉이라기보다, 금기를 둘러싼 사회적 장치가 실제로 어디까지 작동하는지를 실험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특히 장정일은 성(性)을 낭만이나 사적 취향의 영역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성은 늘 권력, 지배, 복종, 통제가 가장 응축된 장소로 등장한다. 그래서 장정일의 성 묘사는 독자를 흥분시키기보다 불편하게 만들고, 도덕적 판단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강제한다. 이 불쾌함은 실패가 아니라 의도된 전략이다. 그는 문학을 “보호받는 예술”로 두지 않고, 처벌의 위험까지 감수하는 실험장으로 밀어붙인다. 이러한 문학적 태도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구현된 작품이 바로 『내게 거짓말을 해봐』다.

2. 예술·성·권력이 얽힌 파국의 서사

소설의 주인공 제이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조각가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조각을 중단하고, 자신이 만들어 온 작품을 부정하려 한다. 그의 예술은 창조의 기쁨이 아니라,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강요했던 규율과 절도의 연장이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제이의 소년 시절을 군대식 규율로 지배했고, 그 영향은 결벽과 강박이라는 형태로 그의 몸에 각인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제이는 조각을 시작했지만, 성공할수록 아버지의 그림자는 오히려 더 짙어진다.

뭇 여성과의 지속적인 성관, 그리고 결혼 역시 그를 아버지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한다. 아내 피는 예술가 제이에 대한 동경 속에서 결혼했으나, 그의 가학적 성관계와 폭력적 욕망을 견디지 못하고 파리로 떠났다. 어느날 지방 소도시에 사는 여고생 와이가 제이에게 전화를 걸오면서 그들의 관계는 시작된다. 전화 통화는 성적 대화로 기울고, 안동에서의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반복적인 성관계를 맺는데, 이 관계는 점차 가학과 피학이 뒤섞이며 고정된 역할 없이 전도된다.

와이의 가족이 이 사실을 알고 와이의 오빠는 제이의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와이가 제이와 함께 전국을 떠돌 때, 그들을 찾아 나섰던 오빠가 죽은 이후, 그들의 관계는 붕괴되고 제이는 파리의 아내에게 돌아간다. 소설의 말미에서 아내 피가 던지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말은, 진실과 고백이 더 이상 관계를 구원하지 못하는 세계를 상징한다.

3. 아버지, 육체, 성, 그리고 처벌의 욕망

1) ‘신버지’- 권위는 무의식이 아니라 육체다

소설에서 제이는 ‘신격화된 아버지’, 즉 ‘신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신버지는 단순한 심리적 환영이 아니다. 아버지의 명령과 억압은 제이의 몸에 직접 작용하며, 새로운 예술을 시도할 때마다 두통과 구토 같은 신체 증상으로 되돌아온다. 이는 권위가 사상이나 관념이 아니라 육체에 각인된 실체임을 보여준다. 장정일은 이를 통해 권위가 개인 내부로 어떻게 내면화되는지를 극단적으로 형상화한다.

2) 성은 쾌락이 아니라 권력이다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 성은 사랑의 표현이 아니다. 성은 보기에 사랑의 표현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배와 복종이 실험되는 권력 장치다. 제이는 때리는 자와 맞는 자의 위치를 오가며 권력의 방향을 전복하려 하지만, 그 전복은 해방이 아니라 더 깊은 결박으로 이어진다. 장정일은 성을 통해 가족, 군대,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즉 폭력의 은폐 구조—를 드러낸다.

3) 처벌을 향한 선택과 표현의 자유

소설에서 제이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밟느니 차라리 그 선을 넘어가겠다”(135쪽)고 말한다. 이는 자기 검열을 거부하고, 권력이 개입해 자신을 묶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선언이다. 이 태도는 작가 장정일의 선택과 겹친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실제로 외설 논란과 판매 금지, 형사 재판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 소설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론서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현실에서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시험한 실험 텍스트다.

4. 문제적 고전,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질문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읽기 불편한 소설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실패가 아니라 성취다. 이 작품은 문학이 도덕과 법의 보호 아래 존재한다는 믿음을 무너뜨리고, 문학이 실제로 처벌될 수 있는 행위임을 몸소 증명했다. 장정일은 예술을 권력의 대항물로 이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예술이 언제나 권력의 판단 대상이 되며, 때로는 권력 앞에 바쳐지는 고해로 전락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오늘날 이 작품을 다시 읽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소설은 중요하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문학은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말한 뒤에 무엇을 감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국 문학사에 각인시킨 작품이다. 성과 권력, 아버지와 국가, 예술과 처벌이 한 인간의 육체 안에서 어떻게 얽히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인 이 소설은, 논란의 유무와 상관없이 한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급진적인 실험 중 하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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