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미야타 세쓰코와 호즈미 신로쿠로의 역할
저서 『식민통치의 허상과 실상』은 일본 식민지사 연구자 미야타 세쓰코가 해설·편집한 책이지만, 이 책의 실제 뿌리는 호즈미 신로쿠로(穗積眞六郞, 1889-1970)가 남긴 방대한 육성 기록에 있다. 호즈미는 1914년부터 1941년까지 조선총독부에서 외사과장, 식산국장 등 요직을 맡았던 핵심 관료로, 패전 후에는 조선에 남은 일본인들의 귀환을 돕는 한편, 총독부 고위층의 회고와 정책 관련 증언을 수집해 기록으로 남겼다.
미야타는 이 기록을 기반으로, 총독부 정무총감·국장·총독비서관 등 고위 관료들의 실제 발언을 체계적으로 편집하여 책으로 묶었다. 따라서 이 책은 “식민 권력자의 입에서 직접 흘러나온 증언을 그대로 담은 자료”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기억과 자기정당화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보여주는 정치적 기록”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만주 정책과 내선일체의 논리- 오노 로쿠이치로의 증언
오노 로쿠이치로(大野綠一郞 1887-1985)는 미나미 총독 시기의 정무총감으로서, 조선과 만주를 하나의 전략 공간으로 묶는 ‘만선일여’ 정책을 강조했다. 그는 만보산 사건이나 조선인의 만주 이주 문제를 “조선인이 만주인에게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이를 안정시키려 일본이 나섰다”고 설명하며, 일본의 대륙정책을 정당화한다. 조선의 병참기지화 정책 역시 “산업 발전과 교통 편의성 확보”라는 명목으로 포장한다.
또한 창씨개명에 대해서도 “일본식 이름을 원한 조선인의 요청이 많았다”고 주장하며 강제성의 실체를 축소한다. 내선일체 정책 또한 “평등 조치의 일환”으로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일본화를 강요하고 조선인의 정체성을 억압한 동일화 정책의 일부분이었다.
오노의 증언은 대체로 조선 통치를 만주 경영 및 전쟁 수행의 필요성 속에 위치시키며, 이를 근대화와 민생 개선으로 미화하려는 시각이 뚜렷하다.
교육정책과 산미증식의 자기정당화- 다나카 다케오의 증언
다나카 다케오(田中武雄, 1891-1966)는 고이소 총독 재임 중 정무총감을 맡았다. 그는 조선인의 교육열이 높아 의무교육 확대나 경성제국대학 설립은 “조선인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교육 정책은 일본어 강제, 황국신민화 교육, 고등교육 접근 제한 등 조선을 일본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통제 체제였다.
그는 산미증식 정책도 “농민의 민생을 고려한 것”이라며 조선총독부가 본국의 압박 속에서도 정책을 유지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산미증식은 소작농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쌀을 일본 본토로 대량 반출한 대표적 수탈정책이었다.
다나카는 조선의 인구 증가, 산림녹화, 학교 증가를 근거로 “일본은 매우 친절한 행정으로 조선을 선량한 국민으로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이는 헌병경찰 통치·사상 통제·언론검열의 현실을 지우는 전형적인 식민지 행정의 미화 서사이다. 참정권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조선인이 황국신민화되었기 때문에 참정권을 부여하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전쟁 동원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합병의 미화와 내선일체의 ‘평등’-강조엔도 류사쿠의 증언
엔도 류사쿠(遠藤柳作, 1886-1963)는 아베 총독 시기의 정무총감으로, 한일합병을 “조선의 민족의식을 고려해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합병은 조선의 외교권·주권을 폭력적으로 박탈한 사건이었으며, 그의 서술은 이를 인도적 고민으로 포장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또한 그는 농지령과 소작권 개정 등을 ‘조선 농촌의 개혁’으로 설명하고, 학교 설치·교육 확대를 조선인의 생활 개선으로 본다. 내선일체 정책도 “차별 철폐 노력의 결과”라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전쟁 말기 인력 확보를 위한 필요에 따른 조치였다. 엔도의 증언은 전시체제 속 조선 동원을 “운명공동체”라는 말로 희석시키며, 일본 지배의 폭력성을 구조적으로 감추려는 특징을 드러낸다.
증언에 대한 평가 ― 식민 권력자의 자기정당화와 기억정치
이 책에 실린 세 명의 고위 관료 증언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1) 식민통치를 ‘근대화’로 재해석하는 자기미화
산업·교육·치안 정책을 근대화·개량의 성과로 설명하지만, 실제 목적은 병참기지화, 전쟁 동원, 조선의 자원·인력 수탈이었다. 이 증언에는 증언에는 이러한 목적을 은폐하고 “우리는 조선을 발전시켰다”는 프레임으로 자신들의 행적을 정당화하는 태도가 뚜렷하다.
2) 강압정책의 자발성 포장
창씨개명·징병제·내선일체 등 강제성이 핵심이었던 정책을 “조선인의 자발적 요구”나 “평등 조치”로 설명한다. 이는 권력자가 폭력적 통치를 스스로 미화하는 전형적 방식이다.
3)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민도 상승의 부작용’으로 축소
독립운동과 저항을 정당한 민족해방운동이 아닌 “교육으로 민도가 높아져 생긴 자연적 현상”으로 규정하여 책임을 회피한다. 이는 식민지 민족의 주체적 역사를 지우는 시선이다.
4) 수탈 구조를 의도적으로 은폐
경제 지표 일부(인구 증가, 산림 녹화, 학교 증가)를 근거로 “수탈이 아니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경제구조는 일본 본토 중심의 불평등 체제였고 이익의 대부분은 일본으로 귀속되었다. 따라서 증언은 사실 자체보다, 식민지 권력자가 패전 후 어떻게 자신을 정당화하고 싶어 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로 읽어야 한다.
이 책의 의의와 한계
『식민통치의 허상과 실상』은 식민지 지배자의 육성을 직접 담아낸 귀중한 사료다. 이 책의 가치는 총독부 고위층의 내부 언어·논리·기억을 그대로 들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은 식민지 통치를 사실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식민 권력자의 시각·자기보호·책임 회피가 강하게 작동한 ‘기억의 정치’임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은 조선 식민지 통치의 본질을 “근대화”라고 주장하는 식민 근대화론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자료며, 역사 연구자는 이를 비판적 시각으로 교차 검증하여 읽어야 하는 사료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