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란의 단편소설 「위해」(2021)- 조용히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연대

이주란의 소설은 언제나 큰 사건보다 사라질 듯한 일상, 말해지지 않는 감정, 그리고 관계의 가장 낮은 온도에 주목한다. 그의 인물들은 대개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으며, 자신의 상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조용히 견디는 방식’을 택한다. 이주란 문학에서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이며, 서사의 공백은 독자에게 의미를 추리하도록 요구하는 적극적인 장치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 현대소설에서 드문 저강도 서정성과 윤리적 감수성으로 평가된다.

1. 헤매는 시간과 스쳐 가는 존재들

단편소설 「위해」는 경기도의 낯선 동네에서 길을 헤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수현은 길을 잃는 과정에서 다리를 다친 새를 만나 토마토를 나누어 준다. 이 장면은 이후 전개될 이야기 전체의 정서를 예고한다.

수현은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조용히, 없는 듯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비닐하우스에서의 삶, 갑작스러운 이주, 서울 변두리 지하방 생활, 공장에서의 노동과 연인 정호와의 관계는 모두 임시적이고 불안정한 삶의 연속이다. 사랑했지만 끝내 가족을 소개하지 못한 채 헤어지는 정호와의 관계 역시 완결되지 않는다.

이후 옆집에 이사 온 열 살 소녀 유리와의 만남이 이어진다. 가출한 언니, 사라진 아버지, 부재한 어머니라는 설명되지 않는 사연 속에서 유리는 혼자 남겨진 아이로 등장한다. 수현과 유리는 함께 산을 오르고, 비를 맞고, 회집에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이 관계 역시 어떤 약속이나 구원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소설은 집 앞에서 각자 헤어지는 장면으로 조용히 끝난다.

2. 설명되지 않는 것들의 의미

단편소설 「위해」는 독자에게 불친절한 소설이다. 수현이 왜 ‘쥐 죽은 듯’ 살아야 했는지, 노부부가 왜 그녀를 맡았는지, 유리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공백은 결함이 아니라 이주란 문학의 핵심 전략이다.

다리를 다친 새, 정호, 유리는 모두 수현과 닮아 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존재들이다. 수현이 새에게 건네는 토마토는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잠깐의 연대를 상징한다. 이 소설에서 연대는 지속되지 않으며, 약속되지 않는다. 다만 스치는 순간에만 가능하다.

산행 장면에서 어둠과 비는 두 인물을 잠시 가까이 묶어 주지만, 하산 이후 다시 각자의 삶으로 흩어진다. 이주란은 이를 통해 관계의 윤리를 묻는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연대라면, 그저 곁에 있어 주는 순간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3. 쓸쓸함 속의 미약한 온기

단편소설 「위해」는 읽고 나면 설명하기 어렵지만, 오래 남는다.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았고, 아무도 구원받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해치지 않고 스쳐 간 기억이 남기 때문이다. 수현이 배운 ‘조용히 사는 법’은 체념이 아니라 타인을 침범하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 읽힌다.

이 소설은 따뜻하면서도 쓸쓸하고, 다시 쓸쓸하면서도 미세한 온기를 품고 있다. 이주란의 문학은 바로 그 미세함의 힘을 믿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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