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화된 인간’과 AI 시대의 새로운 감각-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사적(私的) 인간의 쇠퇴와 새로운 주체의 등장

아즈마 히로키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현대 인간이 더 이상 서사적 욕망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포스트모던 이후 인간은 서사의 의미를 구성하는 데서 멀어지고, 단기적 자극이나 감각적 반응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문화 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사용자가 제공한 자료에서도 강조되듯, 아즈마는 현대인이 “사회적 의미나 윤리적 기준을 욕망하기보다 즉각적 쾌락만을 좇는 동물화된 주체로 전락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틱톡·유튜브 쇼츠·밈 문화·게임·웹소설 등 현대 디지털 환경을 설명하는 핵심 틀로 확장된다. 더 나아가 생성형 AI의 도래는 인간의 상상력과 이야기 구성 능력마저 자동화된 시스템에 이양하는 흐름을 가속하며, 아즈마가 예견한 변화가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문제제기는 단순히 오타쿠 문화 분석에 그치지 않고 포스트모던 이후 인간 정체성의 붕괴와 재편에 대한 총체적 물음으로 이어진다.

전통의 죽음과 ‘의사-일본’: 정체성이 구성되는 방식의 변화

아즈마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일본 고유 전통의 연속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패전 이후 미국식 문화 콘텐츠를 수용하고 일본적 감수성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혼종적 산물로 규정한다. 오타쿠 문화는 일본 고유의 역사적 기반을 상속하기보다, 패전으로 인한 정체성 붕괴 이후 “진짜 일본”을 복원하려는 욕망이 만들어낸 시뮬라크르, 즉 모방의 모방에 가깝다. 다시 말해 그는 오타쿠 문화를 “미국적 형식을 위장한 의사(疑似) 일본”으로 설명하며, 이는 일본 사회가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외부 기호를 조립하여 또 다른 ‘일본’을 생산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관점에서 오타쿠는 어떤 전통적 문화의 계승자가 아니라, 글로벌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 기호를 선택하고 재조합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새로운 유형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대 문화가 본질이나 전통보다 구성과 조립의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내러티브에서 데이터베이스로: ‘설정의 권력’이 지배하는 감수성

아즈마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데이터베이스적 소비’이다. 그는 현대 소비자가 더 이상 서사적 흐름이나 이야기 구조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즐기지 않으며, 캐릭터 설정·세계관·이미지 요소 같은 구성 단위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주장한다. 즉, 독자는 서사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대신, 설정 정보를 수집하고 재조합하며 파생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술자가 된다. 다시 말해 “작품은 더 이상 폐쇄적 텍스트가 아닌 무한한 파생이 가능한 기반 시스템이며, 독자는 해석자가 아니라 재조합자”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웹소설의 세계관 확장 방식, 게임 유니버스의 정교한 설정, 팬덤의 2차 창작 문화, AI 이미지 생성 툴을 활용한 캐릭터 파생 작업 등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구성하는 정보의 조각들, 즉 데이터베이스이다. 이 전환은 창작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의 권력 이동을 의미하며, 작품과 독자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포스트모던적 감수성을 보여준다.

욕망 없는 인간의 등장: 플랫폼 시대가 증명한 ‘동물화’

아즈마는 인간을 욕망의 존재로, 동물을 욕구의 존재로 구분했던 코제브의 논의를 확장해 현대인이 욕망을 상실한 채 즉각적인 만족만을 소비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틱톡·유튜브 쇼츠·밈 문화는 서사적 구조를 지니지 않은 짧은 자극을 반복적으로 소비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사고 능력을 점점 약화시킨다. 다시 말해 “짧고 반복 가능한 콘텐츠는 감정의 인지–반응 회로만을 자극하며, 현대인의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킨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은 욕망을 축적하고 의미를 구성해야 하는 과정 대신, 단기적 쾌락과 즉각적인 정보 반응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 결과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거나 상징세계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감각적 자극에 반응하는 동물화된 소비자로 재편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문화적 현상을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 구조가 변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생성형 AI와 시뮬라크르의 자동화: 아즈마 이론의 기술적 실현

생성형 AI의 등장은 아즈마가 말한 ‘시뮬라크르의 자기증식’을 기술적으로 구현한 가장 뚜렷한 사례이다. AI는 더 이상 원본을 참조해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속 패턴을 조합해 새로운 결과물을 끝없이 생산한다. 이는 “원작 없이 시뮬라크르를 자동 생산하는 시스템”과 정확히 일치한다. AI는 인간의 상상력이나 창작 욕망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이 상상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스스로 구축하며, 인간을 ‘선택하는 존재’로 축소한다. 이런 흐름은 데이터 조각을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이터베이스적 감수성을 극대화하며, 아즈마가 예견한 포스트모던의 구조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인간 주체가 의미 구성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존재였던 인간은 이제 기계가 제공하는 의미 조각 사이에서 선택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될 위험을 맞고 있다.

동물화 이후의 인간을 바라보는 전망

아즈마 히로키의 논의는 인간이 서사와 욕망을 잃어버리고 동물화된 소비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경고로 요약된다. 오타쿠 문화는 이 변화의 초기 신호였고, 데이터베이스적 감수성은 서사를 대체하는 새로운 세계 구조를 제시했다. 플랫폼 시대의 짧은 영상 콘텐츠는 인간의 감각을 더 즉각적인 자극으로 향하게 만들었으며, 생성형 AI는 의미 구성의 주체를 인간에서 기술로 이양하는 전례 없는 전환을 촉발했다. 즉“동물화된 인간 이후 문화의 재구성은 디지털 시대 윤리와 인간성 회복의 핵심 과제”가 된다. 결국 아즈마의 진단은 인간을 비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호와 정보에 파편화된 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다시 의미를 구성할 것인지, 욕망을 회복할 수 있을지, AI와 공존하는 새로운 주체성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묻는 철학적 요청으로 귀결된다. 동물화 이후의 세계에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가—이 질문이야말로 아즈마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며, 앞으로의 문화·윤리·교육을 이끄는 결정적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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