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이지 않는 균열’을 드러내는 연극적 사유
마에카와 도모히로(前川知大)는 일본 현대 희곡에서 독보적으로 자리 잡은 창작자로, 극단 이카이(イキウメ)를 기반으로 SF적 상상력과 일상 리얼리즘을 결합하는 문학적 실험을 지속해왔다. 그의 작품들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인간의 정체성, 사회의 구조적 문제, 집단성과 개인성의 충돌을 탐구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초자연적 현상을 일상 속에 균열처럼 끼워 넣어, 인간이 가진 세계 인식을 비틀어내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희곡 『산책하는 침략자』에서 외계인이 인간의 ‘개념’을 훔쳐간다는 설정은 그 대표적 장치이다. 물리적 전투나 침략이 아니라 언어와 개념의 붕괴를 통해 사회가 무너진다는 설정은 그만이 가진 철학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마에카와는 현실의 불안—전쟁 위험, 자본주의의 소진, 가족의 해체, 일터의 소외—을 초현실의 틀로 들어올려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공포”를 드러내는 작가다. 그의 인물들은 대부분 어딘가 결핍되어 있고, 그 결핍 위로 비현실적 사건이 스며들며 인간성의 본질이 드러난다.

2. 개념을 잃어버린 마을, 남편이 아닌 존재와의 사랑
1) 돌아온 신지와 무너지는 마을
작은 항구 마을 코린초. 며칠간 행방불명되었다 돌아온 카세 신지는 아내 나루미에게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 이전엔 이혼 직전에 이를 만큼 갈등이 심했으나, 돌아온 신지는 감정과 행동이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점점 예전의 모습과 닮아가며 오히려 나루미에게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기괴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어떤 할머니가 일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주민들은 점차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로 변해 간다. 기자 사쿠라이는 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마을에 들어오고, 병원에서 쿠루마다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다른 환자도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분들이 많아요. 과일 가게를 하는데 과일을 모르고, 은행원인데 돈의 개념을 몰라요… 계절, 꿈, 질투, 마음,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해요.” (83쪽)
이 인용문은 마에카와 희곡의 핵심을 정확히 드러낸다. 정상적인 인간성은 개념의 틀로 유지되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일상은 순식간에 붕괴된다는 점이다.
2) 외계인의 정체와 개념 탈취
고등학생 아마노는 사쿠라이에게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고백하며, 그 증거로 병원의의사 쿠루마다에게서 ‘면회 금지’라는 개념을 빼앗아 사라지게 만든다. 인간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세계의 고유 개념을 수집하고 있으며, 인간의 ‘개념’을 빼앗긴 사람은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떨어진다.
신지는 처제에게서 가족 개념을 빼앗고 마루오는 소유 개념을 잃어 사회주의자에서 반전주의자로 변모하며 어떤 사람들은 시간·계절·질투·꿈·돈까지 잃어버린다. 개념을 잃는 순간, 인간은 정상적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마을은 점차 ‘정체성 붕괴 지역’으로 바뀌어간다.
3) 사랑의 개념을 건네는 순간
외계인 신지는 나루미에게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으나 ‘사랑’이라는 개념만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루미는 신지를 위해 자신의 사랑 개념을 가져가라고 한다. 신지가 그 개념을 가져가는 순간, 신지는 인간의 방식으로 나루미를 사랑하게 되지만, 사랑 개념을 잃은 나루미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한다.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별할 수 있다.”
이 장면은 희곡 전체의 정서적 정점이다. 사랑은 감정이기 이전에 관계적 개념이며, 의미 구조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4) 마지막 반전—개념이 사라지면 평화가 올까?
사쿠라이와 히로키, 마루오는 외계인의 침략을 막을 해결책을 찾는다. 놀랍게도 그 방법은 국가·인종·종교·재산 같은 개념을 인류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이 개념들이 갈등을 만들어왔기에, 오히려 그것을 제거하면 지구는 단일한 공동체가 되어 외계인의 침략조차 막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희곡은 신지가 엷은 미소를 띠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 미소는 불안과 희망이 중첩된 상징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의 세계가 얼마나 취약하면서도 강력한지를 말해준다.
3. 개념이 사라진 사회가 던지는 문명 비판
1) 물리적 파괴에서 개념 파괴로
이 희곡에서 외계인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개념을 수집하는 방식이 곧 침략이다. 이는 현대 사회의 정신적·언어적 혼란을 은유한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 과잉, 혐오의 확산, 정치적 조작, 전쟁 위기 속에서 우리 역시 자신도 모르게 개념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 ‘가족’, ‘국가’, ‘자유’, ‘소유’ 같은 단어의 의미가 흔들리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2) 자본주의와 전쟁 국가의 구조적 문제 해부
이 희곡은 개념을 잃은 인물들의 변화를 통해 사회 비판을 수행한다. 소유 개념을 잃은 마루오는 자본주의적 욕망에서 벗어나고 가족 개념을 잃은 아스미는 가족 제도의 인공성을 드러내며 국가와 전쟁의 개념은 외계인의 침략보다 더 위험한 갈등의 뿌리임이 드러난다. 희곡은 이 모든 문제를 단순한 현실 비판이 아닌 개념 비판으로 끌어올려 “개념을 만든 것은 인간이며, 그러므로 인간을 구속하는 것도 결국 인간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3)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매개체 사랑
나루미가 사랑 개념을 잃고 이별할 수 있게 되는 장면은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 관계적 의미 구조, 즉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형식’임을 보여준다. 신지는 사랑 개념을 받아들이며 인간성을 획득하고, 나루미는 사랑을 잃음으로써 인간적 고통에서 벗어나지만 동시에 사랑의 연결도 상실한다. 이 역설은 작품의 철학적 중심이며, “사랑은 주어야만 성립한다”는 개념적 진실을 상징한다.
4) 결말의 함의—모든 개념이 사라진 세계는 평화로운가?
작품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에 서 있다. 국가, 종교, 소유라는 개념이 벗겨진 세계는 평화를 맞을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개념이야말로 인간 문명의 기반이기도 하다. 신지의 미소는 묻는다.
“개념이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정말 인간일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바로 희곡 『산책하는 침략자』가 지금의 세계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성찰이다.

4. 개념의 시대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
희곡 『산책하는 침략자』는 단순한 외계인 이야기나 공포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개념·언어·정체성·사랑이라는 인류의 근본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실험이다. 우리가 ‘지당하다고 믿어 온 개념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어떤 사회적·정서적 참사가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마에카와의 시선은 명확하다. 침략자는 외부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개념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