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 기억을 사회 구조로 환원하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자전적 서사를 취하지만, 감정의 고백보다는 기억의 조건을 분석하는 글쓰기에 가깝다. 에르노는 자신의 경험을 “나의 이야기”로 남기지 않고, 한 계급 출신 여성이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한다.
소설 『부끄러움』에서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는 ‘나’와, 그 과거를 분석하는 ‘현재의 나’를 분리한다. 이 거리두기는 기억을 미화하지 않기 위한 윤리이자, 이 작품을 사회학적 텍스트로 만드는 문학적 전략이다. 『부끄러움』은 이 문학적 기획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1952년 6월 15일의 사건은 단일한 기억이지만, 그 사건은 이후 계급 인식·자아 감각·언어 사용·욕망의 방향을 장기적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구조는 이후 작품들, 특히 『카사노바 호텔』과 『집착』에서 성적 욕망과 강박의 형태로 반복·변주된다.
2. 1952년 6월 15일: 부끄러움의 시간이 시작된 날
소설 『부끄러움』은 1952년 6월 15일 일요일에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했던 장면을 목격한 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끝났다.” (p.13)
이 말 이후 가족은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나가고, 아버지는 그날 저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식당 문을 연다. 화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 일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p.13)
그러나 이 사건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화자는 이 날을 이렇게 규정한다.
“그것은 1952년 6월 15일의 일이다.
내 유년 시절의 정확하고 분명한 첫 번째 날.” (p.13)
이 문장은 『부끄러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다. 폭력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 날 이후 ‘시간이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전의 날짜는 단지 칠판과 노트에 적힌 표시였을 뿐이지만, 이 사건 이후 세계는 기억 가능한 구조로 변한다.
3. “불행을 벌다”
사건 직후 화자가 내뱉은 말은 다음과 같다.
“아빠가 내 불행을 벌어놓은 거야.” (p.13)
본문 각주에서 에르노는 이 표현을 이렇게 설명한다.
“‘불행을 벌다’는 표현은 공포스러운 일을 겪은 후
영원히 미치거나 불행해진다는 뜻의 노르망디 사투리다.” (p.13)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이 사건을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표현은 심리적 해석 이전에, 계급적·지역적 언어의 한계를 보여준다. 말할 수 없음은 곧 이해할 수 없음이며, 이해되지 않은 사건은 몸에 남는다.
4. 부끄러움은 사건이 아니라 ‘이후의 삶’에서 생기다
에르노는 분명히 말한다. 이 소설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의 삶을 기록한 텍스트다. 그녀는 이렇게 쓴다.
“나는 사립학교, 그곳의 품위와 완벽함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부끄러움 속에 편입된 것이다.” (p.105)
부끄러움은 어떤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특정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인식되는 순간 발생한다. 사립학교, 종교적 규율, 중산층의 예절은 화자의 세계가 아니었다.
5. “우리는 그들과 같지 않다”
여행 중 화자가 느낀 계급 감각은 매우 구체적이다.
“넓은 잔디밭과 자갈을 깐 오솔길이 있는 정원을 둘러싼 높은 담장을 바라보면 대번에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62)
여기서 ‘부끄러움’은 추상적 감정이 아니다. 공간·주거·조경·담장이라는 물질적 요소를 통해 계급은 즉각적으로 인식된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6. 언어, 가족, 그리고 아비투스
서술자의 부모는 노동자 계층의 아비투스를 지닌 인물들이다. 거칠고 직접적인 언어, 예의보다는 솔직함이 우선인 대화 방식은 그들 세계에서는 정상이다.
“거칠고 노골적이고 악을 쓰는 것이 정상적인 가족 간의 대화였다.” (p.62)
그러나 사립학교와 중산층의 세계에서 이것은 결함이 된다. 이때 부끄러움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아비투스의 충돌에서 발생한 사회적 감정이다.
7. “나만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에르노는 부끄러움의 가장 잔혹한 성격을 정확히 짚는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p.105)
이 문장은 『부끄러움』의 윤리적 핵심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감정을 개인의 문제로 오인하게 만드는 순간, 부끄러움은 더욱 깊어진다.
8. 부끄러움은 삶의 방식이 된다
마지막에 에르노는 단언한다.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p.125)
1952년 6월 15일의 사건은 끝났지만, 그 이후의 세계 인식은 끝나지 않았다. 『부끄러움』은 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계급 사회 속에서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끝까지 추적한 문학적 사회학이다.
이 소설은 지금도 강력한 이유는, 독자 역시 자신의 삶 어딘가에서 ‘설명할 수 없었던 부끄러움’을 발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